기사 메일전송
[밑줄긋기]『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자전 에세이
  • 이민주
  • 등록 2017-08-05 10:06:12
  • 수정 2026-02-11 08:54:43
  • 목록 바로가기목록으로
  • 링크복사
  • 댓글
  • 인쇄
  • 폰트 키우기 폰트 줄이기

기사수정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창업주 지음. 제삼기획. 2001. 5.

 



-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와 자세에 달려 있다. 도전은 모험이지만 모험이 없으면 제자리 걸음 다음에 뒤쳐지고 그 다음은 주저 앉는다.


- 나의 부지런함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첫째 가는 내 평생 자본이자 재산이다.


-나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지 특별한 사 람은 아니다. 인류 역사나 세계 각국의 발전사를 보면 이 지구상의 많은 국가, 기업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오고 있다. 어제의 선진국이 오늘은 한없이 영락(零落) 한 세계의 환자가 되어 있는가 하면 어제는 대수롭지 않았던 기업이 오늘 대단한 기업으로 변신해 있는 경 우도 볼 수 있다.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국가면 국가,기업이면 기업의 중추를 이루는 사 람들이 얼마나 진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를 표본으로 보아도 그 긴 역사를 통해 진취적인 기 상이 살아 있을 때는 대륙으로 한없이 발전해 나갔었지만 그 기상이 꺾인 후 로는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다. 진취적인 기상을 상실했기 때문에 육지로도 바다로도 뻗어나갈 생각은 않 고, 이 좁디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집안끼리 형제끼리 서로 다투는 데만 긴 세월을 허비한 것이다. 



◆ 아이젠하워 장군의 "원더풀!" 


부산의 유엔군 묘지 단장 공사를 맡아 하는 중이었다. 전시라 옛 장 한 조각 입힐 겨를도 없이 흙바닥 그대로 황량하기 짝 이 없는 유엔군 묘지였다. 그러한 곳을 한국전에 출병한 각국 유엔 사절들이 내한해 참배할 계 획이었다. 

때문에 엄동설한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8군 사령부는 묘 지 단장 공사가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것도 천지가 광광 얼어붙은 깊은 삼동 (三冬)에 그 묘지를 어떻게 파랗게 단장해 줄 수 없느냐는 기상천외한 주문이었다. 

‘정주영은 남이 못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 람’으로 믿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한겨울에 천도복숭아 구 해 내라는 식이니 그 순간 섬뜩했다. 게다가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나는 참으로 당황했다. 참배는 닷새 후였다. 나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있었다. 

내 머리는 생각하는 머리이다. ‘콜롬보스 달걀이 별 거냐. ’ 나는 ‘풀만 파랗게 나 있으면 되는 거냐’ 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아이디어 값 포함해서 실제 공사비의 세 배를 요구했다. 세 배 아니 라 열 배도 못하겠다 할 처지가 아닌 그들이었다. 그 길로 나는 김영주를 시켜 트럭 30대를 사방에서 끌어 모아 낙등강 연안 남지,모래질 벌판의 보리밭을 통째 사서 파란 보리 포기들을 떠다 묘지에 심었다. 깊은 겨울에도 모래질 보리밭 보리 포기는 잘도 떠졌다. 어쨌거나 파랗게 단장만 하면 목적 달성이었다. 유엔 사절 일행이 와봤자 각국 사병 묘지에 꽃만 바치고 돌아갈 텐 데 파란 풀을 이것이 보리냐 잔디냐 따질 것인가. 


미군 관계자들은 “원더풀,원더풀, 굿 아이디어 ! ” 큰눈을 휘둥그래 더 크게 벌려 뜨고 감탄했다. 이후 미8군 공사는 손가락질만 하면 다 내 것이었다.



◆ 오백원 지폐의 거북선과 현대조선소  


이제부터 선주를 찾아 나서야 할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은 아무 구조 물도 없는,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 무 몇 그루와 초가집 몇 채 선 초 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이 전부였 다. 나는 ‘봉이 김선달’이 되었다.


1070년 3월,조선 사업부를 설치하고 이어서 부지 선정 둥 기초작업 을 본격화시켰다. 울산항 내 염포리(현대자동차 자리) 소재 부지 25만 평을 매입,테 스트 파일을 박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반이 스펀지같았다. 파일을 박으면 튀어나오고 박으면 튀 어나오곤 했다. 땅도 아까웠지만 바람이 없어 방파제를 만들 필요가 없는 그 자리에 나는 꼭 조선소를 짓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만 튀어나오는 파일을 다 시 박고 또 다시 박으면 해머 실린더가 열에 팽창해 떨어져 나가 펄흙 에 처박히곤 했다. 그해 가을 전하만,미포만, 일산만이 연접한 현재의 부지를 다시 선 정했다. 


그 때 백만 톤급 도크를 파고 있던 미쓰비시의 나가사 키 (長崎) 조선소, 가지마(鹿島)건설 둥에 가서 직접 보고 오기도 했 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선체라는 것은 정유공장 탱크 만들 듯 도면대로 구부려 용접하면 되는 것이고 안에 들어가는 기계도 빌딩의 냉온 방 장치,엘리베이터처럼 따로 사다 도면대로 설치하는 것이었고, 도 크라는 것은 선체가 들어가는 좀 엄청나게 큰 수영장에 지나지 않았 다. 


다만 선박이 움직이는 물체라는 것만 달랐다. 당시 만성적 인플레 속에서 조선소를 짓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수지 맞는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조선 경기는 2 ,3년으로 내리막길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이자는 이자를 낳는 시대였고 공정 기간도 길었다. 그런 악조건 속 에서도 기업을 부실화(不實化)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사회적인 명제였 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우선 빨리 만들어 놓고 가다가 고쳐쓰자. 도크를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손으로 진입도로를 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로를 비롯한 간접 자본 분야에서 마찰이 생겼다. 예산 미달을 이유로 지연되는 도로를 우리가 깔기 시작하자 정부는 사전 공 사는 위법이라는 경고를 내렸고,장차 중전기와 엔진 부분까지 계산에 넣은 나의 공업용수 5배 초과 확보 관철도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 직원들은 송사 (訟事)에 얽혀들기도 했고 사업 타당성에 회의를 품은 도시 계획위원회는 현대조선 사업본부를 불러들이기 시작 했다. 


“조선소는 허황된 꿈이 아니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닦은 막강한 건설군단과 막강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단양에는 현대시멘트가 있 다. 입지조건 또한 완벽하다. 차관 역시 배를 팔 수 있게 되는 즉시 해결된다. ” 수 개월에 걸친 도시계획위원회와의 실랑이는 만만치 않았다. 세평 도 냉정했다. 그러나 나는 신념이 있었고 신념이 있는 한 멈출 수 없었다. 


그해 9월, 영국의 애플도어사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 협 조 계약을 체결하고 그때까지 별무 신통으로 남아있던 차관 도입이라 는 난제 중의 난제와 승부를 내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가 A& P 애플도 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M어떻게 버클레이를 움직일 수 없습니까? ” 앞서 정희영 상무가 교섭했으나 신통한 반응이 없었던 은행이었다. 


“아직 선주도 나타나질 않고 또 한국의 상환 능력과 잠재력 자체에 의문이 많아서 곤란하군요. 


” 롱바톰 회장의 대답에 맥이 쭉 빠졌다. 그런데 그때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5백 원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나는 5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펴 보였다. 


“이 돈을 보시오,이것이 거북선이오.”


 한때 오대양(五大洋)을 기선단으로 누비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해운국의 후예 롱바통 회장이 지폐 위에 그려진 거북선을 물끄 러미 내려다 보았다. 


“우리는 1천5백 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던 실적과 두뇌가 있 소. 영국 조선 역사는 1천8백 년대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3백 년이나 앞서 있었소. 다만 쇄국 (鎖國)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 동안 아이디어가 녹슬었던 것이 불행한 일이지만 그러나 잠재력은 그 대로 갖고 있습니다. ” 내 말에 롱바톰 회장이 빙그레 웃었다. 그의 도옴으로 버클레이은행 과 차관 도입 협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버클레이은행은 우선 관계관들을 우리나라에 파견해서 우리가 건설 한 화력발전소,비료공장,시멘트공장들을 조사시켰다. 조사 결과, 현대건설의 모든 인원과 기술자의 재교육과 훈련을 전제 한다면 우리가 배를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12



◆ 무쇠 덩어리가 떴다 


저 무쇠덩이가 과연 뜰 것인가 


무리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뛰어넘어 만들었다 해 도 물에 안 뜨면 배가 아니고 배가 아니면 우리가 흘린 숱한 땀도 단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게 된다. 바람이라도 불면 덩치 큰 유조선이 도크 가장자리에 부딪쳐 배가 망 가질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제2도크 안에서 만들어진 유조선을 진수시켜 미포만 제1, 제2 안벽까지 가져 가서 1호와 2호를 나란히 정박시켜야 했다. 그래야 박대통령 내외분과 선주 부부를 비롯한 국내외 저명 인사 1 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조선소 준공식과 대형 유조선 두 척의 명명 식을 동시에 거행할 준비가 끝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산과 같은 배를 방파제 입구를 빠져 나가게 해서 전하만 안벽으로 가져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엔진의 시동도 완전 하지 못한 배라서 어떤 선장도 배를 움직여 볼 용기를 못냈다. 나는 선장실에 올라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설득해서 무면허 시 운전 인원을 총동원했다. 우려한 대로 배의 몸체가 도크 가장자리에 스치기 시작했다.


“로프 !  로프 , 가져 와!”


로프를 걸어 양쪽에서 잡아당기게 하여 평형을 유지시켰다. 


가히 움직이는 피라밋이었다. 그런데 저 무쇠덩어리가 과연 뜨기는 뜰까.  미포 도크 현장에 와서 1호기를 보고 미래학자 허만칸 박사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진수를 시작한지 네 시간만인 새벽 5시, 탱커가 물 위로 밀려나가고 프로펠러가 포말을 만들며 그 거대한 무쇠덩어리를 밀어냈다. 


숨도 못 쉬고 지켜 보던 사람들 입에서 일제히 “와 아 ! ” 함성이 터졌 다. 과연 뜨기는 뜰까가 도도하고 의연하게 떠 준 것이었다. 


나는 그때 모여 서서 방관만하던 선장들에게 전부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라고 호통을 쳤다. 유조선은 제2도크 앞바다를 빠져나가 마지막 겉치장인 외장공사를 위해서 세 시간만에 반대편 전하만 1호 안벽에 접안되어 정박했다



◆ 나의 마감은 언제나 '내일 아침' 


나의 마감 시간은 언제나 내일 아침이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일의 지시도 긴 시간을 안 준다. “내일 아침까지 해놓으시오. ” 


직원들은 모두 한가하지 않다. 때문에 시간을 길게 주면 내일,모 레, 글피로 미루어놓고,다른 일 계속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후다닥 지시한 일에 들러붙어 만들어 내기 때문에 졸속이 뻔한 쓸모없는 결과 가 되기 십상이다. 직원들에 대한 나의 독려는 비단 건설 현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원효로 4가의 중기공장은 매일, 어떤 날은 하루 두 번도 들러 아 침에 다녀갔으니 내일 오겠지 하고 지시받은 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던 직원들을 혼비백산시키기도 했다. 나는 누가 뭐라든 내 철저한 확인과 무서운 훈련,끈질긴 독려가 오 늘의 현대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외국 사람들은 회의 참석을 위한 출장에 55세 이상은 사흘 전,젊은 사람은 이틀 전에 현지 도착을 시킨다. 시차를 극복하고 맑은 정신으 로 상담에 임하라는 배려이다. 우리 형편은 이직 그 단계가 못된다. 바로 그날 도착해 그 길로 상 담에 임해서도 시차 관계 없이 정신 똑바로 차려 훌륭하게 성사시키고 와야 한다. 나 자신 미국,유럽을 1주일 다녀와 그 이튿날 곧장 현장으로 달려 가곤 한다. 피곤할 때가 물론 없지 않았지만 장차 경영자가 되도록 직원들을 훈 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가까운 나라 일본 기업은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이 역사적으로 정리되 어 있어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우리의 두뇌와 능력이 이무리 출중해도 10년, 15년으로 그들의 1백 년을 따라 잡기는 어렵다. 그들을 따라 잡자면 그들이 쓰는 10시간을 나의 삶 나의 이상 97


우리는 20시간,30시간으로 늘려 시간을 극복하는 것과 유능하고 진취 적인 경영자들을 키워내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매일이 새로워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해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또 한 테두리 커지고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이 가치 있는 삶이며 인류 사회를 성숙,발전시킬 수 있다. 나의 철저한 현장 독려는 우리 직원들과 나, 사회와 우리 국가가 함 께 나날이 새로워지기 위한 채찍이다. 지금 현재 현대의 중역진치고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지 않은 사람 이 없고, 산하 생산업체 지휘자 역시 거의가 건설 출신이다. 건설 현장에서 내 단련을 받으며 일을 배운 사람은 어느 자리 무슨 일도 해 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현대조선소에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며 정열을 쏟을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이며 경제를 담당하는 부총리가 나를 불러,현대조선 소가 성공하면 내 열 손가락에 불을 붙이고 .하늘로 올라가겠다며 절대로 불 가능하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조선소는 세계 제일의 조선소가 되었으며 그는 아직 땅 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온 세계 시장에서 선진국들이 다 하고 남은 일,선진국들의 제조 능력이 모자라서 남은 부분만 찾아 공장을 짓고 선진국들의 손이 모자라서 못 파는 지역만 찾아 물건을 팔려고 한다면 한국의 산업이 할 일은 한 가지 도 없다. 선진국들은 우리가 자기들이 하고 남는 부분만 하기를 바라겠지만 남는 것 도 없을 뿐더러, 그래서는 절대로 발전할 수도 살아 남을 수조차 없다. 


기름을 캔다거나 가스를 캐는 일은 과거 미국,일본,프랑스 정 도가 했었다. 우리가 이 해양 개발에 뛰어들 때 또 온 세계가 다 무모하다고 했었지만 지금 우리는 인도양의 심해 둥 해상에서만 매년 3억 달러어치 이상 원유와 가스생산 공사를 계속하고 있고,미국과 서구 몇 나라가 우리와의 경쟁에 고 전하고 있으며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이 분야에서는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 니다. 우리가 뒤떨어져 있는 분야라고 주저한다든지,미지의 분야라고 두려워한 다든지 , 힘들다고 피한다든지 하는 것은 패배주의이다.



◆ 첫 사업 '쌀가게' 복흥상회


복홍상희 쌀가게 생활 4년만에 당시 나로서는 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제의를 받았다. 만주까지 돌아다니며 가산을 탕진하는 외아들의 난봉이 심화 되자 의욕을 상실한 주인 아저씨가 나에게 쌀가게를 넘겨받으라고 했 다. 


굵직굵직한 단골 손님을 그대로 물려받고, 정미소로부터는 이전과 다름없이 월말 계산으로 쌀 공급은 얼마든지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고, 나는 단 한 푼의 자본금도 없이 그동안 쌓은 신용만으로 일개 배달꾼 에서 쌀가게 주인이 되었다. 신당동 길가에 집을 얻어 ‘경일상회 (京一商會)’로 간핀을 새로 달았 다. 고향을 등진 후 4년만의 일이었고, 스물 두 살 나이였다. 곧 시골의 사촌동생 원영이를 불러 올려 나와 같이 배달을 시키면 서,복홍상회에서 물려받은 단골들 쌀만 대기에도 눈코 분간 못하게 바빴지만,그쯤으로 만족할 수 없어 나는 대량으로 쌀을 소비해 줄 거래처를 부지런히 개척하고 다녀 배화여고와 홍제동 서울여상 기숙사 도 고객으로 만들었다. 장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장사꾼에게는 돈보다 신용이 첫째라는 것 을 체험으로 안 나는 어떤 약속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 아 신용 거래의 폭도 점점 넓어져 가고 있었다. 그대로만 나갔으면 나는 어쩌면 미곡상으로 대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남자(淮南子) 인간훈( 人間訓:)에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는 말도 있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도 있다. 쌀가게를 시작한 지 2년 남짓한 ’37년 7월 7일 이른바 ‘노구교 사건’ (直 繼 事件= 일본군과 중국군이 충돌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내 전면전이 시작되고 총독부가 전시체제령을 내렸다. 총독부는 우선 못,철사,철판 둥 군수품에 해당하는 물자들을 배 급 • 통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어서 정미소를 통제하더니 ’39년 12월 나의 삶 나의 이상 63


드디어 쌀 배급제가 실시되었고 전국의 쌀가게가 모두 문을 닫게 되었 다. 쌀가게의 문을 닫고 충격은 컸지만 그러나 나는 잃은 것보다 더 귀 중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전심 전력을 기울여 성실히 뛰면 어떤 일을 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체험으로 얻은 확신이었다. 가게를 정리했다. 한창 재미있던 시절에 비해서는 미흡한 결과였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식산은행에 취직한 은행원 월급이 70원 정도 였는데 그 봉급의 15개월치 가량의 돈을 들고,고힘을 떠난지 7년만에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께 는 2천여 평을 사드리고 농사 자금도 얼마쯤 드렸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이를테면 소 판 돈 훔쳐들고 야반도주를 했던 불효막급한 0}들의 금 의환향인 셈이었다. 



◆ 빈대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 


-작은 자본을 갖고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뭘까? 골똘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물색하다가 우연히 쌀가게 단골이었던 이을학씨를 만났다. 서울에서 제일 큰 경성서비스공장 직공이었던 그가 마침 처분하려고 내놓은 아현동 고개에 있는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 공장을 추천 권유했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전혀 깜깜 절벽이었지만 큰 자본 안들이고 돈 벌 수 있는 사업이라는 이을학씨 말에 솔깃했다. 게다가 그는 직공들도 모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법규 위반이 문제였다....(중간 생략)


나는 빈대에게서 배운 게 있었다. 네 번째 가출로 인천 부두에서 막노동할 때,그곳의 노동자 합숙소 는 그야말로 빈대 지옥이었다. 떠 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한 지경에 도 잠을 잘 수 없게 빈대가 극성 이었다. 하루는 다같이 꾀를 써서 밥상 위에 올라가 자기 시작했는데, 잠시 잠깐 뜸한가 싶더니 이내 밥상 다리로 기어 올라와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서 밥상 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 가놓고 잤다. 빈대가 밥상 다리를 타려하다가 양재기 물에 익사하게 하자는 묘안이었다. 쾌재를 부르면서 편안히 잔 것이 하루나 이틀쯤이었을까. 다시 물어 뜯기기 시작했다. 불을 켜고 도대체 빈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양재기 물을 피해 올라왔 나 살펴 보았더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빈대들은 네 벽을 타고 천정으 로 올라간 다음 사람을 목표로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빈대도 물이 담긴 양재기라는 장애를 뛰어 넘으려 그토록 전심 전력으로 연구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제 뜻을 이루는데 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빈대에게서 배웠다. 


해결이 날 때까지 매일 아침마다 동대문경찰서 곤도오( « ) 보안계 장집을 찾아가 사정을 하기로 작정했다. 첫 날 새벽,과자 한 상자를 들고 찾아갔지만 그는 요지부동에 과자 도 거절했다. 거절당한 과자를 그대로 들고 나오자니 뒤통수가 뜨겁고 앞일이 심난해서 그집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이튿날,이번에는 빈 손으로 다시 가서 역시 거절당했다. 그 이튿날도 또 갔다. 한 달을 매일 아침,같은 시간에 찾아가 똑같은 통사정을 똑같이 되 풀이했다. 


마침내 곤도오 보안계장이 손을 들었다. “내가 졌다. 너는 당장 구속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 찾 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구속하겠나. 네가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지만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위법을 해도 경찰 체면을 생 각해 줘 가면서 해라. ” 그는 우선 공장이 대로변에서 보이지 않도록 판자로 울타리를 칠 것,그래서 울타리 치고 숨어서 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귀띔했다. 성공이었다.  곤도오 경부는 ‘내가 졌다. ’ 이후 전혀 성가스럽게 굴지 않았다. 


1940년 2월 1일 계약금을 치르고 공장을 인수해 문을 열었다. ... 당시 서울에는 황금정 6정목(을지로 6가)의 경성 서비스, 혜화동 로터리의 경성 공업사. 종로 5정목의 일진공작소가 꽤 큰 규모로 자동차 수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미한 고장도 괜히 고치기 힘든 고장인 척 날짜를 길게 잡고 그날짜 만큼 수리비를 많이 청구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역이용했다. 열흘 걸릴 수리 기간을 사흘에 고쳐내는 대신 수리비를 다른 공장보다 더 많이 요구했다. 자동차를 발로 쓰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빠른 수리가 유리하지 수리비 더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 장안의 고장난 차는 모조리 나의 신설동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자동차를 발로 쓰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빠른 수리가 반갑지 수리비 더 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장안의 고장난 차는 모조 리 신설동으로 몰려들게 마련이었다. 나는 밖에 나가 지면을 넓혀 가며 주문을 받아내고 수리비 수금하는 일 외의 시간은 거의 공장에서 종업원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분해해서 고치고,기름치고,다시 조립해서 죄어주는 일들을 반복하는 동안 이 내 모든 기계 원리가 포함되어 있는 자동차 엔진 구조를 완벽하게 터득했다.


대단치도 않은 난관에 실망, 위축돼 체념하려는 사람을 보면 나는 '빈대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리 공장은 밤을 새우다시피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 밥 구걸 


 밥 구걸은 난생 처음이라 느닷 없는 걸식을 할 일이 그렇지 않아도 난감한데 지주원이 먼저 꽁무니를 뺐다. 자신은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커서 “밥좀 주십시오.”하기가 민망하고 창피스러울 뿐더러,자기보다 어린 내가 나서는 것이 밥 얻는데도 더 유리하리라는 게 이유였다. 그도 그럴싸해서 두말 없이 그러마 하고 혼자 나섰다. 


진짜 거지가 아니니 거지의 기본 필수품인 깡통이나 바가지도 없는 맨손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그중에서도 제법 잘 살겠다 싶어 보이는 집 마당으 로 슬그머니 들어섰다. 마침 온 집안 식구가 마루에서 아침을 먹는 중 이었다. 우선 주인 영감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길 가는 사람인데 노자 가 떨어져 밥을 좀 얻어 먹으러 왔습니다. 밥 좀 주십시오. ”했다. 오십을 좀 넘어 보이는 점잖은 주인 영감이 빙그레 웃으면서 “이 녀 석아,뭐가 떨어졌다구 ? ”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난생 처음 해 보는 ‘밥 좀 주십시오’에 쥐구멍이 있으 면 파고 들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노자가 떨어졌어요. ” 간신히 내놓은 내 대답은 내가 듣기에도 한심하리 만큼 다 죽어가는 사람 목소리였다. 그런데 주인 영감이 소리를 내어 웃고 나서 하는 말이 “이 녀석아, 그걸 안 떨어지게 꽉 붙들어 멜 것이지 어쩌다가 떨궜어 ! ”였다• 나의 삶 나의 이상 29


차라리 굶는 편이 낫지 부끄러워 도저히 더 이상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을 수가 없어 그대로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와 버렸다. 후일 생각하니 내심 밥술 후하게 먹여 보낼 생각으로 농담삼아 건넨 말이었던 것인데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수치심이 앞서 최초의 거지 행 각에 실패했던 것이다. 거지질에도 용기와 뚝심이 필요했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다 검은 물감을 들인 광목 바지 저고리뿐 속옷 을 입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겨울이면 서양대 쪽에서 눈보라를 치며 무섭게 바람이 불어젖히는 속에서도 우리는 정신 없이 놀았다. 바람에 저고리 앞자락이 젖어 배 가 얼었다. 다 놀고 방에 들어가면 벌겋게 언 배가 녹으면서 근질근질 부어오르곤 했다. 열한 살 겨울에 나는 몹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찬 눈바람을 맞으 면서 지나치게 놀다 감기가 든 것도 모르고 있다가 더쳤던 모양인데, 급기야는 기침을 할 때마다 목 안에서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 했다. 학교를 쉬고 여섯 달을 누워 있었다. 


그 튼튼하던 몸이 마른 삼대처럼 되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에나 등교할 수 있었는데,그래도 성적은 2등이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러 처음으로 사업차 미국에 갈 일이 생겨 적십 자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의사가 폐병을 앓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 그런 병은 앓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의사가 폐를 앓 은 혼적이 있는 엑스 레이 필름을 보여 주었다. 무지했다고 할까,우직했다고 할까,그런 시대였고 그런 사람들이었 다.



◆ 20 세기 최대 주베일 공사 


주베일 산업항 건설. 나는 사우디 모랫벌에 그만큼 큰 일이 있다는 것에 벌써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했고 딱 하나 남아있는 자리에 가슴이 뛰었다. 어떻게 해서든 열 개 입찰 초청 회사의 님겠다는 것이 사우디 내 무성의 강경책이었다. 


관리자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평등한 자세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인내심을 갖고 책임을 다하는 모범적 행동을 보일 것. 주베일 현장 노사협의회에서 나는 또 이런 말로 과격한 근로자들을 선도 지도했다. 


“현대는 지금 중동 여러 나라에서 다른 어느 나라 건설회사보다도 많은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사우디 관리들은 우리들의 성실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의 신뢰를 잃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현대뿐만이 아니라 국익에까지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현대는 여러 외국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기 때 문에 우리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또 다시 저지르면 각국 경쟁 회사가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 한국인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입니다. 모든 것 이 낯설고 힘든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는 개인의 이해 득실보다는 국가 의 이익을 앞세워 생각하고 불만족스러운 점은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근로자들 각자의 이익이 충족되도록 원만하게 해소,처리해 가는 슬기 를 보이도록 합시다. ” 


근로자는 임금을 어느 수준까지는 보장받아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임금을 높이면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 할 수도 있으나 어느 선까지는 임금 수준을 높임으로써 오히려 생산성 이 향상되고 따라서 기업의 채산성도 올라간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수준으로 받아야 할 임금은 이 정도라는 자기 기준을 갖고 취직을 한다. 취직할 때는 임금 얘기로 취직 자체를 못하 게 될까 무서워 저임으로라도 0}무 말 없이 응한다. 


그러나 그 사람 은 자신이 생각하는 임금 수준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1백 퍼센트 자기 능력을 발휘하려 들지를 않는다. 교육을 받았든 못 받았든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물가 수준,사회적 자리,남과의 비교 등으로 스 스 로 를 평가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기능공들의 임금 인상은 중간 관리자들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 다. 중간 관리자들이 시설을 개량해 주고 공법을 개선해 주고 장비를 효율적으로 쓰게끔 시설을 개선•지도하고 간접 인원을 줄여 일선 생산 기능공과 혼연일체가 되면 생산 능력은 자동적으로 향상되고 그러면 임금을 올려도 경쟁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기술자와 중간 관리자 그리고 기능공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최 고 경영자는 고임금을 주어야겠다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재원을 조 달,임금 인상을 회사의 이윤 확대로 연결시켜야 한다. 나는 기회와 시간이 허락하는 한 수많은 기능공들과 어울려 허물없 이 팔씨름도 하고 술잔도 나누고 했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기능공들 이 안쓰러워 점심 제공을 맨 처음 시작한 것도 우리 현대이다. 새벽의 남대문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낯 모르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그 한 없는 연대감과 애정을 나는 내 일에 참가한 기능공들에 게도 언제나 공통되게 느낀다.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하고 그들의 단순함과 우직함을 좋 아하고 또 그 순수함을 신뢰한다. 그런 그들과 나 사이에 격의감이 가 로놓이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중역용 엘리베이터를 한 대 놓으시죠. ” 언젠가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안 됐지만 즉석에서 면박을 주었다. 도대체 그런 것이 왜 필요한가. 엘리베이터는 기다리면 탈 차례가 오는 것이다. 젊은 사원이 차례를 양보해서 먼저 탈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중역용 엘리베이터고 회장용 엘리베이터이다. 현대는 나와 기능공들,그리고 모든 임직원들이 함께 이룬 것이다. 함께 이루어 만들었으니 근본적으로 우리는 다같은 동지라야 하며 인 간적인 차등감을 느끼게 하는 우매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현대는 큰 공사를 수행할 때 부장 이상에게 독방을 준다거나 현장 소장한테는 큰 차를 준다. 그것은 그들이 우쭐거리라고 주는 것 이 아니다. 그가 중요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열심히 생각하며 사고 없 이 모든 사람을 제대로 지휘하라는 의미로 주는 것이다. 이라크 철도 부설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현장에 간다니까 윗사람에 대한 대접이람시고 가설 건물에 부랴부랴 카펫을 깔아놓았 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나는 직선적인 성격이라 참지를 못했 다. “나는 평생 집에서도 카펫 깔고 산 일이 없소. 윗사람은 모범적이어 야 해요. 사훈은 ‘검소’라고 써붙여 놓고 카펫이 검소요? 사치가 뭘 유도하는지 알아요? 부패요. 또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거요. 사치하고 부패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회사치고 잘 되는 회 사 없고,사치하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치고 안 망한 나라가 없소. 그 사치가 싫어서 사훈 (社訓)을 ‘검소’로 한 거요. 


나는 평생 외국 시계를 차 본 적이 없소. 도대체 현장 사무실에 카펫이 뭐요. 기능공들이 어 떻게 생각할 것 같소. ” 혹자는 나의 질책이 가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나 극약이 영약일 수도 있다. 사원과 기능공들의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높은 장벽이 서서히 무너 지기 시작하면서 손바닥만했던 새마을 상담실 간판도 문짝만큼 키우고 평사원 상담역을 과장으로 바꿨다. 일찍 그랬어야 할 일이었다. 험악한 욕설이 정다운 인사로 바뀌고 작업 능률은 사태 이전보다 훨 씬 향상되었다


 현대의 성공을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운이 좋았다 치더라도,그러나 운도 공짜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성공한 것은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 라고 생각한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도 철저한 시간 운영으로 공사 기 간을 단축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갖췄고 이 능력은 건설 원가를 줄 여 주었다. 남들이 1년에 해내는 일을 우리는 9개월에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 다. 공기를 줄이면 그만큼 금리와 임금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1백억 원에 하는 공사를 우리는 80억 원으로 할 수가 있고 그 게 바로 우리의 경쟁력이며 우리의 성공 요인이다. ‘시간은 돈’이라고들 하나 나는 ‘시간은 생명’이라고 하고 싶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견문이다. ‘고선지부지설 (苦禪之不知雪 : 매미 는 겨울에 내리는 눈을 알 수 없다)’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 나와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 에 없어지는 매미가 한 겨울 펑핑 쏟아지는 눈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 이며, 누군가가 눈 이야기를 한들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인가. 견문이 좁은 사람은 마음도 좁아서 자기 상식이 전부인 줄 알고 미 련하게 낙오되어 살다 불쌍하게 간다. 현대건설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국내는 물론 오대양,육대주를 발 바닥에 불이 나게 누비면서,갖가지 시련에 부딪칠 때마다 진취적인 기백과 용감한 모험심과 불 같은 정열과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하고 배 우면서 철저하게 경쟁하여 이겼기 때문이다



◆ 원료 조달, 생산 공정, 판로 개척 


- 모험과 도전은 거대한 조직에 활력과 긴장을 넣어준다.


- 기업가는 이익을 남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지 국가를 위해, 또는 사회를 위해 거저 돈을 넣어주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기업가들이 사회에 주는 기업의 열매는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면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이익을 남기는 것이 기업가에게는 절대절명의 명제이다. 탈법은 안된다. 그러면서도 이익은 남겨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기단축(혁신) 밖에는 없었다.


- 기업인이 새로은 일을 만들 때 꼭 짚어야 하는 것은 첫째, 원료 조달이 어렵지 않아야 하고, 둘째 생산 공정이 단순해야 하며, 세째 판로 개척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 백이면 백사람이 약속이나 한듯 반대를 합창했다. 한 사람도 내 편이 없었다. 건설만 하던 현대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과연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조선이라고 해서 공장 짓는 것과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철판 잘라 용접하고 엔진 올려놓고 하는 일은 모두 우리가 건설 현장에서 하던 일이 아닌가?
이미 우리는 아주 정밀한 기술을 요구하는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했었다 큰 철 탱크 속 엔진실에 터빈 화력 발전소를 집어 넣는 일이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일이지만 쉽게 여기면 또 쉬운 것이 세상 일이다.


- 공학자들은 돈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기업인은 돈과 시간에 쫓긴다는 현실이 있다. 그래서 공학자들의 이론과 주장대로만 따라갈 수 없는 고민이 있다.


- 미국 포드자동차가 우리의 합작 제안을 거절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약(medicine) 이었다. 우리는 자동차 독자 생산에 나섰고, 성공했기 때문이다.


- 나는 재벌이라는 말을 끔찍히 싫어한다. 재벌이라면 악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것 또한 대단히 섭섭하다. 요즘 기업가를 흠모의 대상으로 삼는 젊은이들이 있다. 섭섭하게도 우리의 기업가가 아니라 미국의 기업가를 말이다.


미국의 경제 발전사를 아는가. 그들은 서부개척이다, 철도 부설이다 하면서 총으로 사람 죽이기를 다반사로 했고, 금융가에서는 위조증권을 마구 찍어냈다.


그것에 비교하면 한국의 기업은 선비들이 일으키고 이뤄낸 것이다. 우리 기업에서 권총들고 설친 이는 단 한사람도 없다. 우리는 부아가 터지면 기껏 상대편 집에 돌이나 몇개 던지고 말았다


- 여유가 없으면 창의가 죽는다. 

hankook66@naver.com

'버핏연구소' 구독하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윤진기 칼럼]《램덤워크 투자수업》의 오류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 저자의 경력이나 명성 때문인지 2020년에 번역 출판된 《램덤워크 투자수업》(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 12판은 표지부터가 거창하다. ‘45년간  12번 개정하며 철저히 검증한 투자서’, ‘전문가 부럽지 않은 투자 감각을 길러주는 위대한 투자지침서’ 라는 은빛 광고문구로 독자를 유혹한다.[1] 출판 5...
  2. [신규 상장 목록] 세미파이브, 전일비 9.98% ↑... 현재가 2만 5900원 23일 오후 2시 6분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서 세미파이브(490470)가 전일비 ▲ 2350원(9.98%) 오른 2만 5900원에 거래 중이다.  세미파이브는 맞춤형 반도체(ASIC) 설계와 IP 통합을 제공하는 반도체 설계 플랫폼 기업이다. 삼성 파운드리 기반으로 SoC 설계부터 양산까지 원스톱 설계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어 리브스메드(491000, 6만 2600원, ▲ 3600, 6.10%),...
  3. [버핏 리포트] 삼성에스디에스, 견조한 공공·금융 수주로 매출 반등 기대...가이던스 상향 - 하나 하나증권은 23일 삼성에스디에스(018260)에 대해 해상 운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으나 지역 내 운송 및 창고 수요 증가로 물류 부문 매출액이 전분기대비 성장했다며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목표주가 22만원을 제시했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전일 종가는 16만9200원이다. 이준호 하나 연구원은 “삼성에스디에스는 4분기 매출액 3.
  4. [원자재] 테크 리소시스, 동 생산 목표 ‘정타’…공급 안정 신호에 구리 시장 숨 고른다 글로벌 구리 시장에서 공급 차질 우려가 한풀 꺾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캐나다 광산업체 테크 리소시스(Teck Resources)가 2025년 동(구리) 생산량을 45만3천 톤으로 마무리하며 연초에 제시한 가이던스(회사 목표치)에 정확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생산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시장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번 결과의 핵심은 칠레...
  5. [신규 상장 종목] 엔비알모션, 전일비 3.35% ↑... 현재가 2만650원 16일 오후 1시 13분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서 엔비알모션(0004V0)가 전일비 ▲ 670원(3.35%) 오른 2만650원에 거래 중이다. 엔비알모션은 정밀 감속기·모션제어 핵심 부품을 개발·제조하는 로봇·자동화 부품 전문 기업이다. 협동로봇·산업로봇·자동화 설비용 구동 솔루션을 중심으로 국산화 수요 확대의 수혜가 기대된다. 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